작년 이맘때쯤 제가 다니는 학교에 들어온 DP302 3D프린터를 1년간 사용해보며 느낀 간단한 후기입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2D프린터의 단점을 때려박은 3D프린터” 입니다.
기존의 일반적인 레이저/잉크젯 프린터(편의상 이 글에서는 2D프린터라고 지칭)의 장단점(아무것도 모르는 개인도 메뉴얼을 따라하면 비싸긴 하지만 어쨌든 가능은 한 유지보수)를 3D프린터에 그대로 옮기고자 노력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질적으로 사용해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우선, 2D프린터를 만드는 회사들의 잘못된 습관과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논하고 싶은 부분은 필라멘트 박스와 필라멘트침(토너칩), 그리고 그 부산물들입니다.
신도리코 DP302프린터는 필라멘트가 감겨 있는 알맹이(스풀)에 플라스틱 박스를 포장해 두었으며 이 플라스틱 박스에 토너칩이 들어갑니다.
마치 일반적인 2D프린터가 생각나는 구조입니다. 다만, 2D프린터와 다른 점은, 저 박스를 쉽게 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왜 박스가 저렇게 쉽게 열리는 걸까요?
정품을 써도 저 안에서 필라멘트가 굉장히 자주 걸리기 때문에 열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프린터를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비정품 2D프린터 잉크나 토너 리필을 할 때 토너나 잉크 카트리지 뚜껑을 열고 잉크에 손을 대는 것과 크게 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있었던 일입니다.
슬라이싱을 마치고 프린터에 메모리 카드(USB)를 꼽고 퇴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혹시나 인쇄가 잘 되었을까 두근반 세근반 프린터에 가봅니다.
아뿔싸, 필라멘트가 걸렸다고 합니다. 필라멘트가 없어서 인쇄가 안된거면 차라리 덜 억울하기라도 하지, 걸려서 인쇄가 안된거면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내 잘못도 아니기 떄문입니다.
필라멘트 박스 꺼내기 버튼을 눌렀더니 알아서 꺼내기 작업을 미리 하고 기다릴 것이지 이제야 필라멘트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노즐 온도가 200도까지 데워지는데 몇 분의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는 필라멘트가 노즐에서부터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기 시작합니다.
프린터는 필라멘트를 꺼내려고 노력하지만 기본적으로 인쇄가 중단된 이유가 중간에 걸려서 안나오는건데 역행이 참 제대로 되겠습니다. 드드득거리며 역행이 중단되고 프린터 스크린에는 필라멘트를 꺼내는데 실패했으니 니가 알아서 꺼내라는 문구가 표시됩니다. 필라멘트 박스의 잠금이 툭 하고 해제되고 박스를 꺼내는데 프린터에서 필라멘트가 주루룩 딸려 나옵니다. 딸려나온 필라멘트를 가위로 자르고(잘 잘리지도 않음) 박스를 열었는데 안에서 필라멘트가 신나게 엉겨 있습니다.
한숨 한번 푹 쉬어주고 엉킨 필라멘트를 제거합니다. 꺾인 필라멘트는 사용할 수도 없고 중간에 잇지도 못하기에 꺽인 지점에서 필라멘트를 자릅니다. 인쇄에 사용하지도 못한 필라멘트가 3미터가 뭉텅 잘려나갑니다. 게다가 신도리코 정품 필라멘트는 비싸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명 정품 필라멘트 쓰는데, 그것도 노후화된 프린터도 아니고 프린터에 기본으로 꼽혀 나온 번들 카트리지 다 사용하기도 전에 추접스럽게 필라멘트 박스 뜯어서 엉킨 필라멘트를 제거하고 있습니다.
자, 이 상황을 일반적인 2D프린터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2D프린터를 사용하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제조사가 하란 대로 “정품잉크”를 사용하는 방법과, 제조사가 권장하지 않지만 조금 더 프린터를 싸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리필잉크”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정품잉크”를 사용하는 사용자와 “리필잉크”를 사용하는 사용자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정품잉크"를 사용하는 사용자는 프린터에서 잉크가 부족하다는 경고가 뜨면 인쇄가 다 될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리고 원하는 데까지 인쇄가 끝나면 프린터기 옆의 박스에서 새로운 잉크를 깝니다. 그리고 프린터의 뚜껑을 열고 기존의 잉크를 품위있게 쓰레기통에 던진 다음, 새 잉크를 프린터에 집어넣습니다. 프린터가 알아서 움직이며 새로운 잉크를 반겨줍니다.
"호환잉크"를 사용하는 과정은 어떨까요? 인쇄가 다 끝나고 혹시나 인쇄가 또 반만 되었을까 조마조마하고 프린터로 갔는데 아뿔싸, 오늘은 잉크가 부족했는지 글씨가 하나도 안 보입니다. 잉크를 충전하면 카트리지에 잉크가 얼마나 남았는지 잔량이 보이지 않기 떄문입니다.
하고 인쇄가 되는지 확인했더니, 인쇄가 잘 됩니다.
프린터에서 잉크 카트리지를 빼내고, 찬장 안에 숨겨둔 큰 박스에서 손가락만한 주사기와 묵직한 잉크 병을 꺼냅니다.
손에 잉크가 묻는 것도 마다한 채 잉크를 주사기로 옮겨담습니다. 그리고 카트리지를 다른 한 손에 잡고, 제조사가 열지 못하게 막아둔 구멍을 뚫고 잉크를 주입합니다.
25초 후, 드디어 카트리지에 잉크를 다 주입했습니다. 오늘은 운이 좋게도 얼굴에 잉크방울이 튀지 않았습니다. 카트리지에서 질질 흐르는 잉크를 휴지로 닦아주고 손을 씻으러 갑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잉크를 다시 장착
오늘도 내 시간 30분을 사용해서 피같은 잉크값 삼만 오천원을 아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격스럽습니다.
비싼거 알면서 사람들이 정품 잉크 왜 쓸까요? 잉크 트러블 생겼을때 번거롭게 손에 잉크 묻히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비싼거 알면서 사람들이 왜 정품 필라멘트 쓸까요? 필라멘트 트러블(=압출 문제) 생겼을때 꼬이고 엉긴 필라멘트 풀고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런데, 그런 정품 사용자가 왜 꼬인 필라멘트를 풀어야 할까요?
물론 신도리코 측에서는 필라멘트 박스의 목적이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끼도록 만드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적극 항변할 것이지만, 좌우지간 필라멘트 박스가 프린터를 사용하기에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결과를 달성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두번째 문제는, Fillament-Path가 매우 길고 부품이 많으며 복잡합니다.
(* 2D프린터에서, 종이가 지나다니는 길을 종종 Paper-path라고 표현합니다. 이에, 3D프린터에서 필라멘트가 지나다니는 길을 Fillament-Path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다음 이미지는 코코아팹에서 가져온, 일반적인 기존의 3D프린터 Fillament-Path입니다.
필라멘트에서 노즐 모터(익스트루터 모터)를 거쳐서 필라멘트가 공급됩니다. 이러고도 필라멘트가 종종 걸리긴 하는데,,,, 적당히 조치하면 됩니다.
신도리코를 제외한 제가 지금까지 써본 모든 3D프린터가 이런 방식이었습니다(프루자계열, 큐비콘 등등등)
그럼 이제 신도리코 3D프린터의 Fillament-Path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기어와 Fillament-Path가 복잡하고 길죠? 물론 기어 개수와 필라멘트가 걸리는 빈도수가 꼭 비례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역수에 비례하지도 않죠.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일단 필라멘트가 걸리면 걸린 필라멘트를 확인하고 꺼내는 난이도는 기어 개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필라멘트가 어디서 걸리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필라멘트패스 어딘가에서 걸린겁니다.
사용자가 조치 가능한 지점에서 걸렸을수도 있고, 조치 불가능한 지점에서 걸렸을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진단이 안됩니다. 조치 불가능한 지점에서 걸렸으면 서비스맨 올때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데 어디서 걸렸는지 알아야 내가 문제인지 프린터가 문제인지 판단을 하고 빠른 포기를 하거나 아니면 조금 더 프린터를 뜯어보며 삽질을 해볼겁니다.
저도 사용중에 한번 사용자가 조치 불가능한 지점에서 필라멘트가 걸린 적이 있습니다. 졸업작품 발표가 코앞이라 야곰 야곰 뜯어서 결국 조치 하긴 했습니다만, 내부구조가 정말 쓸데없이 복잡하며 불필요한 구조물과 기능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럼 제가 말한 불필요한 구조물과 기어들, 제조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넣어두진 않았을거고, 그럼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조립식 3D프린터의 경우, 필라멘트를 스풀(필라멘트가 감겨있는 원통)에서 한 가닥 꺼내서 노즐 바로 옆에 있는 익스트루터 모터까지 사람이 손으로 필라멘트를 밀어 넣어줘야 합니다.
당연히 귀찮은 과정입니다.
없앨 수 있으면 없애는게 좋습니다.
신도리코 DP302모델의 경우 이러한 절차를 없애기 위해서 1차 모터(0~1차의 경우 실질적으로는 모터는 아니고 기어만 있고, 동력은 본체의 모터에서 받아서 작동합니다) 지점까지 필라멘트가 삽입된 상태로 필라멘트 박스에 담아서 필라멘트가 공급되며, 품위 있게 필라멘트 박스를 통째로 본체에 밀어넣으면 2차 모터에서부터 노즐까지 알아서 필라멘트가 쭉 들어갈
수도 있고,
필라멘트가 들어가다가, 혹은 인쇄 중에 안에서 비비다가 어딘가에서 걸려가지고 필라멘트 박스 안에서 신나게 꼬일 수도 있습니다.
박스 안에서 필라멘트 꼬였죠? 박스 열어서 필라멘트 걸린거 풀고 프린터 뜯어서 필라멘트 걸린거 제거해야 하겠죠?
장담컨데 필라멘트가 이유 불문하고 2D프린터 종이보다 더 자주 걸리는데, 걸린거 빼내는 난이도는 너무 높습니다.
뭐,,, 솔직히 압출 문제는 3D 프린터를 하는 사람이라면 일상적이며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물론 신도리코처럼 구조가 복잡하면 조치가 불가능할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조치 가능한 지점에 필라멘트가 걸리게 됩니다.
그럼 일단 조치 가능한 지점에 필라멘트가 걸렸다고 해봅시다,
여기서 세번째 문제가 있습니다.
시스템이 쓸데없이 느리고 복잡합니다.
뭐라도 해볼려면 일단 필라멘트 박스부터 꺼내야 하는데, 이렇기 위해서는 화면을 터치해서 노즐을 적정 온도까지 데우고 필라멘트 박스 Eject버튼을 눌러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노즐을 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필라멘트가 걸려서 짜증이 나는데 박스 꺼내는데 몇분씩이나 걸리고, 그 빈도수도 매우 잦습니다.
그래서 걸린 필라멘트가 제대로 나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매번 이미 걸린 필라멘트 더 걸리게 만들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먹통이라도 되면? 재부팅을 시켜야겠죠?
먹통되서 재부팅 했더니 F/W Recovery 하는 프린터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러다 저거 실패하면 우째되는 걸까요? 집짓는데 쓰는 벽돌되는 걸까요?
3D프린터 내부에 들어가는 시스템이 쓸데없이 복잡하여 아무때나 재부팅 하기도 어렵고 재부팅시마다 시스템이 부팅되는 것을 매번 기다려야 합니다. 정상 부팅이 되더라도 그다지 빠르게 되는것도 아니기에 1~2분은 기다려야 프린터의 조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열번정도 사용을 했을까요? 프린터의 최종 사용자가 저인데 제가 사용한지가 6개월이 넘었습니다.
도저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방치중이라는겁니다.
SW부터 HW를 넘어 기구까지, 어떻게 이렇게 모든 방면에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지도 모르겠고, 요즘 학생들 실습용으로 조립시키는 Anet A8 조립식 프린터보다 손이 많이 가고 더 자주 고장나며 정비성은 여섯배는 더 나쁜 것이 가격은 10배가 더 비쌉니다.
솔직히 이런 물건을 어떻게 돈 주고 파는지도 모르겠고, 더 화가 나는건 이게 어떻게 나라장터에 올라올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는겁니다.
뭐 사실 표현이 그런거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나라장터에 뭐가 올라오던지간에 다 받아줘야 하는건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다만, 사용후기조차도 쓰지 못하는 쇼핑몰이 어떻게 정상적인 쇼핑몰인건지, 그것도 국가(나라)의 장터로 인정을 해줘야하는건지에 대해서 의문이 듭니다.
이런 물건들은 일반적인 쇼핑몰이었다면
별 하나도 아깝다
라는 후기를 잔뜩 받고 애진작에 도태되었을거고, 다른 기관들도 이런 지뢰를 밟을 일은 없었을겁니다.
조달청이 굉장히 비합리적인게, 공무원들더러 지네들 쇼핑몰에서만 구매를 할 수 있게 해뒀으면 최소한 다른 사람들 후기라도 확인할 수 있게 해두던가, 업체 감언이설(상품설명)은 올려주면서 정작 다른 사용자들 후기는 보지도 못하게 해두고, 물건 모델명은 슬쩍 바꿔둬서 검색도 안되게 해두는걸 나라장터(조달청)에서는 뒷짐 지고 방치합니다.
이건 그냥 사기 쇼핑몰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 어쨌든 납품은 되면 사기는 아니라구요?
허 이건 뭐 어디 시장판도 아니고 참,,,,
어쨌든 그리하여 저는 신도리코 3D프린터는 개인 구매할 일이 없을 듯 하고, 솔직히 말해서 회사에 대한 신뢰 역시도 굉장히 많이 떨어진 상태라서 신도리코 제품이라면 2D프린터까지도 피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큐비콘사의 프린터는 출처가 나라장터임에도 불구하고 꽤 품질이 괜찮았던 기억이었는데(가격이 합리적이라고는 안 했음), 신도리코는 가격도 비싸고 품질도 실망스럽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나라장터에서 활개치는 페이퍼컴퍼니들에 대해서 올려보겠습니다.
페이퍼컴퍼니 없을 것 같죠? 우리나라 대기업입니다.